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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살인마가 잡혔는데도 피해자 가족의 지옥은 끝나지 않는다면, 법은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요. 2015년 개봉한 범죄 스릴러 <살인의뢰>는 바로 그 불편한 질문을 정면으로 던지는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범인을 잡았는데 왜 이야기가 시작되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이 작품의 핵심이었습니다.

 

피해자 가족의 시선으로 본 사적 복수의 민낯

영화를 보기 전에 저는 막연히 '복수극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스크린 앞에 앉았을 때 느낀 건 통쾌함이 아니라 먹먹함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이 아니라, 범인이 이미 잡힌 이후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연쇄 살인마 조강천은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집행은 되지 않고, 그 사이 피해자 가족들은 매일 지옥 속에서 살아가죠.

여기서 핵심 개념이 하나 등장합니다. 바로 사적 복수(私的 復讐), 즉 국가 공권력을 거치지 않고 개인이 직접 가해자에게 보복을 가하는 행위입니다. 쉽게 말해 "법이 안 해주니까 내가 직접 한다"는 선택인데요, 영화는 이것이 과연 정당한가를 끝까지 묻습니다. 아내를 잃은 평범한 은행원 승현이 복수귀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는 그를 비난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한국의 사형 집행은 1997년 이후 단 한 차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출처: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형 선고는 존재하지만 집행은 멈춘 상태, 이른바 실질적 사형 폐지국(de facto abolitionist)으로 분류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여기서 실질적 사형 폐지국이란 법률상 사형 제도는 유지하되, 10년 이상 집행 실적이 없어 국제 기준상 사실상 폐지된 것으로 간주되는 국가를 말합니다. 영화 속 승현의 분노가 단순한 극적 장치가 아니라 실제 유가족들이 마주하는 현실의 반영이라는 걸 알게 되니, 보는 내내 불편함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승현의 행동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보다, 오히려 조용히 계좌를 추적하고 증거를 모으는 장면들이었습니다. 김성균 배우가 표현한 건 격렬한 분노가 아니라 차갑게 얼어붙은 슬픔이었거든요. 그게 훨씬 더 무서웠습니다.

  • 한국은 1997년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실질적 사형 폐지국 상태
  • 조강천은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교도소 내에서 피해자 가족을 심리적으로 계속 괴롭힘
  • 승현의 복수는 충동이 아닌 3년에 걸친 치밀한 계획의 결과
  • 영화는 복수를 미화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승현 자신도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여줌
요약: 살인의뢰는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 현실 속 피해자 가족의 사적 복수를 통해, 법의 공백이 남긴 상처를 묵직하게 파고드는 영화입니다.

 

사형제도와 배우 연기력, 두 마리 토끼를 잡았나

제가 이 영화를 두고 가장 자주 받은 질문이 있습니다. "볼 만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건 호불호가 나뉘는 영화입니다. 저는 시나리오보다 배우들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박성웅이 연기한 연쇄 살인마 조강천은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사이코패시(psychopathy), 즉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핵심 특성인 공감 능력의 결여와 피상적 매력을 동시에 보여주는 연기였는데요. 여기서 사이코패시란 타인의 고통에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상대를 도구처럼 대하는 인격적 특성을 말합니다. 조강천이 피해자 가족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있는 장면은, 대사 한 마디 없이도 왜 이 인물이 위험한지를 느끼게 해줬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눈빛 연기가 가능한 배우가 국내에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스토리 구성에서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서사적 개연성(narrative plausibility), 즉 이야기 안에서 사건이 논리적으로 연결되는 납득 가능성이 후반부로 갈수록 흐릿해집니다. 교도소 내부를 사실상 개인이 좌지우지하는 전개나, 주요 인물들이 너무 타이밍 좋게 같은 장소에 모이는 장면들이 대표적입니다. 제가 직접 두 번 봤는데, 두 번째 시청에서 이 허술함이 더 잘 보였습니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 즉 "사형제도가 있어도 집행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누가 떠안느냐"는 충분히 중요합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중범죄 피해자 가족의 상당수가 사건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경험하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지연되거나 기대에 못 미칠 때 증상이 악화되는 경향을 보입니다(출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여기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란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후 그 기억이 반복적으로 떠오르고, 일상적인 생활 자체가 어려워지는 심리적 상태를 말합니다. 영화 속 태수와 승현이 3년이 지나도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모습이 바로 그 현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영화적 완성도를 따지면 흥행 실패가 이해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박성웅의 연기와 이 영화가 제기하는 사회적 질문만큼은 오래 남는 작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정도 주제면 조금만 더 탄탄하게 만들었어도 걸작이 됐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영화입니다.

요약: 배우들의 연기력, 특히 박성웅의 압도적인 악역 연기는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후반부의 개연성 부족이 이 영화의 잠재력을 스스로 갉아먹은 것이 가장 큰 아쉬움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살인의뢰 실화 바탕인가요?

A. 특정 실화를 직접 원작으로 한 영화는 아닙니다. 다만 사형 미집행 현실, 피해자 가족의 분노, 연쇄 살인범 관련 사회 문제를 배경으로 삼고 있어 실제 유사 사건들과 맥락이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유영철 사건 등 당시 충격을 남긴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것도 그 때문으로 보입니다.

 

Q. 영화가 잔인한 편인가요? 무서운 장면이 많나요?

A. 폭력 묘사가 있는 편이라 자극적인 장면에 민감하신 분께는 다소 불편할 수 있습니다. 다만 공포 영화 수준의 잔혹함은 아니고, 범죄 스릴러 장르에서 통상적으로 허용되는 수위의 연출입니다. 저는 장르 팬이라 괜찮았지만, 폭력 신이 서사보다 자극 자체를 위해 소비된다는 느낌이 든 장면도 일부 있었습니다.

 

Q. 박성웅 살인의뢰 연기가 정말 그렇게 좋은가요?

A. 제 경험상 이 영화에서 박성웅의 연기는 단연 압권입니다. 눈빛과 표정만으로 공감 능력이 완전히 결여된 사이코패스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표현했고, 대사가 없는 장면에서도 존재감이 살아 있습니다. 영화 전반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그의 연기만큼은 오래 기억될 만합니다.

 

Q. 한국은 실제로 사형이 집행되지 않나요?

A. 그렇습니다. 한국은 1997년 12월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국제 기준상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됩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수형자는 현재도 교도소에 수감된 상태로, 이 법적 공백이 피해자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지가 이 영화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결론

살인의뢰는 흥행에서는 실패했지만, 제가 보기엔 꽤 오래 곱씹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범인을 잡고 나서도 끝나지 않는 피해자 가족의 이야기, 집행되지 않는 사형 선고, 그리고 그 사이에서 스스로 악마가 되기를 선택한 한 남자의 이야기는 불편하지만 외면하기 어려운 현실을 담고 있습니다.

시나리오의 허술함이 아쉬운 건 사실이고, 저도 두 번째 볼 때는 그 부분이 더 거슬렸습니다. 그럼에도 박성웅의 연기와 이 영화가 제기하는 사회적 질문만큼은 장르 팬이라면 한 번쯤 직접 확인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범죄 스릴러를 찾고 계신다면, 통쾌한 복수극을 기대하기보다 묵직한 질문을 받을 준비를 하고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6Mb1ODF2A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