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취를 받았는데 수술 중에 의식이 깨어났다면 어떨까요. 몸은 꼼짝도 할 수 없는데 살이 잘리는 고통은 고스란히 느끼는 상황. 단순히 상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지는데, 2007년 개봉한 한국 스릴러 영화 은 이 의학적 공포를 정면으로 다뤘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가장 강렬하게 남은 장면도 바로 그 첫 시퀀스였습니다. 열 살 소년이 수술대 위에서 아무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는 그 장면은, 다른 어떤 장르적 장치보다 훨씬 깊은 공포를 안겨줬습니다. 수술 중 각성이라는 소재, 얼마나 현실적인가영화의 출발점은 수술 중 각성(Intraoperative Awareness)이라는 실제 의학적 현상입니다. 수술 중 각성이란 전신마취 상태에서 의식이 부분적으로 또는 완전히 깨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완제가..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류승룡과 하지원이 함께 나오는 작품이라면 믿고 봐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믿음이 이번엔 조금 흔들렸습니다. 《비광》은 화려한 삶을 살던 전직 야구선수와 톱배우 출신 부부가 숨겨진 딸의 등장과 맞물린 대형 스캔들로 한순간에 추락하고,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이야기입니다. 감정의 결은 분명히 살아 있었는데, 막상 영화관을 나오면서 든 생각은 좀 달랐습니다. 신파 클리셰와 과잉 감정 사이에서《비광》이라는 제목은 비광숙 개구리에서 따온 말입니다. 여기서 비광숙(飛光宿)이란 도약하려 해도 제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는 처지를 빗댄 표현으로, 쉽게 말해 아무리 뛰어올라도 제 발광을 받지 못하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주인공 황중구는 고교..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모텔 방에서 시작되는 첫 장면을 보면서 그냥 자극적인 소재로 승부 보려는 영화겠거니 했는데, 5분도 채 안 돼서 제 예상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영화 《몸값》은 장기매매 조직이 운영하는 인신매매 경매장을 배경으로, 포식자와 피식자의 위치가 순식간에 뒤바뀌는 반전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전종서가 연기하는 주영이라는 캐릭터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기억에 남을 작품입니다. 반전 구조 — 포식자가 먹이가 되는 순간제가 직접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오프닝 시퀀스에서 느낀 불쾌감은 계산된 것이었다는 걸 한참 뒤에야 깨달았습니다. 외딴 모텔에서 자신을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소개하는 여고생 주영, 그리고 그 앞에서 화대를 흥정하며 교복 마크의 학교명이 다르다는 걸 잡아내는 형..
영화관을 나오면서 "좋은 건 알겠는데, 뭔 얘기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동행에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2018년작 이 바로 그 영화였습니다. 두 번 보고 나서야 이 작품이 단순한 미스터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존재를 어떻게 느끼게 만드는가에 관한 정교한 설계도라는 걸 알았습니다. 종수·해미·벤, 세 사람이 존재하는 방식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이걸 실종 스릴러로 받아들였습니다. 해미가 사라지고, 종수가 쫓고, 벤이 의심받는 구조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 영화를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분류하는 경향이 있는데, 제 경험상 그 틀로 접근하면 2시간 28분 내내 허탈함만 남습니다. 이 영화는 장르적 쾌감을 주지 않으니까요.세 인물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감(presence)을 획득합니..
손 하나로 과거를 읽어낸다는 설정,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를 보고 나서 그 의심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다단계에 빠진 형사와 벽화를 그리는 괴짜 청년이 아동 유괴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이 영화, 과연 초능력 소재가 스릴러를 살렸을까요, 아니면 잡아먹었을까요. 브로맨스가 이 영화를 버티게 한다두 남자가 처음 만나는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노상방뇨를 하다 걸린 형사 양춘동(김강우 분)이 벽에 그림 그리는 남자에게 훈계하다가 오히려 얻어맞고 도망당하는 장면, 제가 직접 봤을 때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이 장면 하나가 두 캐릭터의 관계를 단번에 설명합니다.버디 무비(Buddy Movie), 쉽게 말해 성격이 정반대인 두 인물이 한 팀이 되어 사건을 해결하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인터넷을 떠돌던 '치악산 18토막 살인사건' 괴담이 스크린으로 옮겨온다고 했을 때, 저는 꽤 기대를 품고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실제 지명과 도시전설이 맞물린 한국형 산악 호러라는 조합은 처음부터 남달리 당겼으니까요.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 제가 느낀 건 공포가 아니라 허탈함이었습니다. 치악산 괴담을 원작으로 삼은 설정, 처음엔 통했다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느낀 건, 도입부만큼은 꽤 영리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영화 은 산악바이크 동호회 '산가자' 멤버들이 라이딩 영상 촬영을 명목으로 깊은 산속 산장을 찾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현대인의 취미 활동인 마운틴 바이킹(MTB, Mountain Biking)을 공포 서사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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