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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을 나오면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제가 알던 '서쪽의 사악한 마녀'가 사실은 이런 사람이었구나 싶어서요. <위키드>는 그 유명한 오즈의 마법사 세계관을 뒤집어, 악역으로만 소비되던 엘파바의 편에서 이야기를 다시 씁니다. 보고 나서 오히려 질문이 더 많아졌던 작품이었습니다.

위키드를 보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오즈 세계관
솔직히 처음엔 예습 없이 갔습니다. 뮤지컬 원작이니 알아서 설명해주겠지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영화가 시작되고 오즈(Oz)라는 세계가 펼쳐지자, 뭔가 이미 전제된 것들이 많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위키드>는 1900년에 출간된 소설 『오즈의 마법사』를 원작으로 한 세계관의 프리퀄(prequel)이었습니다. 프리퀄이란 원작보다 시간적으로 앞선 이야기를 다루는 전편을 뜻합니다. 즉 도로시가 오즈에 도착하기 훨씬 전, 이 나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위키드>의 출발점입니다.
오즈라는 나라는 사방이 사막으로 둘러싸여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공간입니다. 이 고립성(isolation) 덕분에 문명의 발달과 반비례하여 마법이 아직 살아 숨 쉬는 곳으로 설정돼 있습니다. 오즈는 동서남북 네 방위에 각각 마녀가 존재하는데, 동쪽과 서쪽의 마녀는 사악하고 북쪽과 남쪽의 마녀는 선하다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 한복판 에메랄드 시티(Emerald City)에는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가 군림하고 있습니다.
제가 뒤늦게 원작 줄거리를 찾아봤을 때 가장 흥미로웠던 건 마법사의 정체였습니다. 위대한 마법사처럼 행세하던 그 존재가 사실 미국 캔자스 출신의 평범한 인간, 즉 열기구 사고로 오즈에 불시착한 사기꾼이었다는 점입니다. 커튼 뒤에 숨어 지역 전체를 가스라이팅(gaslighting)해온 셈인데, 가스라이팅이란 타인의 인식과 판단을 조작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현실을 구축하는 심리적 지배 방식을 말합니다. <위키드>에서 마법사가 엘파바를 '사악한 마녀'로 낙인찍는 과정이 바로 이 구조 위에서 작동한다는 걸 알고 나니, 영화의 정치적 맥락이 훨씬 선명하게 읽혔습니다.
- 오즈는 사막으로 고립된 마법 국가, 에메랄드 시티가 수도
- 동·서 마녀는 사악, 남·북 마녀는 선량한 구조
- 위대한 마법사의 실체는 가스라이팅으로 권력을 유지한 평범한 인간
- <위키드>는 도로시 이전 시대를 다룬 프리퀄
엘파바와 글린다, 두 여자의 이야기가 건드린 것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장면은 역시 'Defying Gravity'였습니다. 엘파바가 하늘로 솟구치는 그 순간, 저는 영화를 보면서 손끝이 좀 떨렸습니다. 과장이 아닙니다. 태어날 때부터 초록색 피부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로 아버지에게도, 또래에게도, 사회 전체에게도 배척당해온 인물이, 그 모든 시선을 끊어내는 장면이었으니까요.
엘파바의 서사는 소수자 차별(minority discrimination)이라는 사회적 의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소수자 차별이란 특정 집단이 외모·출신·신념 등의 이유로 주류 사회에서 배제되거나 억압받는 구조적 현상을 말합니다. 영화는 이 개념을 엘파바의 초록 피부라는 시각적 상징으로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실제로 영화 비평 매체 출처: RogerEbert.com에서도 <위키드>를 "정체성과 편견에 관한 우화"로 평가했습니다.
글린다 역시 단순한 조연이 아니었습니다. 대중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선의 상징으로 소비되는 인물이지만, 제가 보기엔 오히려 그 점이 더 불편하게 다가왔습니다. 선량한 척 자신의 특권을 의식하지 못하는 인물, 그러다 엘파바와의 우정을 통해 조금씩 균열이 생기는 과정이 훨씬 현실적이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글린다에게서 더 많은 제 모습을 봤습니다. 나쁜 사람이 아닌데 구조에 무감각한 사람 말이죠.
서사 한계 — 감동적이었지만 아쉬웠던 것들
보고 나서 며칠이 지나도 계속 머릿속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영화가 끝난 뒤 감동보다 의문이 더 오래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가장 큰 불편함은 대중이 엘파바를 '사악한 마녀'로 받아들이는 속도였습니다. 마법사 일당의 선동이 있었다고는 해도, 오즈 시민들이 아무런 저항감 없이 그 서사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너무 빠르고 평면적으로 처리됩니다. 대중 선동(propaganda)의 메커니즘, 즉 반복적인 정보 왜곡과 공포 자극을 통해 집단의 인식이 조작되는 과정을 좀 더 촘촘하게 보여줬다면 설득력이 훨씬 높아졌을 겁니다. 실제로 선동의 작동 방식에 관한 심리학적 연구는 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에서도 다수 발표된 바 있는데, 공포와 집단 정체성을 결합한 메시지가 비판적 사고를 얼마나 빠르게 무력화하는지가 핵심입니다. 영화는 그 '빠름'을 결과로만 보여주고 과정은 생략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피에로를 둘러싼 삼각관계도 저는 좀 다르게 봤습니다. 감정선을 풍성하게 만드는 장치였을 수는 있지만, 극의 핵심인 정치적 억압과 소수자 서사라는 무거운 주제를 오히려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는 생각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이중 구조는 어느 한쪽이 희생되기 마련인데, 아쉽게도 이번엔 주제의식 쪽이 밀려났습니다.
결말에서 엘파바가 선택한 은둔도 개인적으로는 납득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오즈의 독재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체하는 대신 개인의 구원과 우정으로 갈등을 봉합하는 방식은, 체제 비판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현실 도피성 타협으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파트 2에서 이 부분이 어떻게 전개되는지가 관건일 것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위키드 보기 전에 오즈의 마법사 원작을 꼭 알아야 하나요?
A. 필수는 아닙니다만, 알고 가면 몰입감이 확실히 다릅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마법사의 정체와 마녀들의 구도를 미리 파악하고 갔을 때, 영화 안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장면들이 훨씬 입체적으로 보였습니다. 줄거리 전체를 읽을 시간이 없다면 세계관의 기본 구조만 파악해도 충분합니다.
Q. 위키드는 뮤지컬을 본 사람이 더 재밌게 볼 수 있나요?
A. 뮤지컬 원작을 아는 관객은 곡의 배치나 장면 연출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 자체가 처음 접하는 관객을 전제하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원작을 모른다고 크게 불리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세계관 정보 없이 봤을 때 놓치는 부분이 더 아쉬울 수 있습니다.
Q. 위키드 파트 1만 봐도 완결된 이야기인가요?
A. 파트 1은 엘파바와 글린다의 관계, 그리고 엘파바가 '사악한 마녀'로 낙인찍히는 과정까지를 다룹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호를 이루긴 하지만, 결말이 완전히 열려 있어 파트 2 없이는 미완성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제 경우엔 오히려 그 열린 결말이 더 오래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Q. 오즈의 마법사에서 은구두가 위키드랑 연결되나요?
A. 네, 연결됩니다. 원작에서 도로시가 신게 되는 은구두는 원래 동쪽의 사악한 마녀가 아끼던 것이고, 서쪽의 마녀도 그 구두를 탐냈습니다. <위키드>는 그 동쪽·서쪽 마녀가 등장하는 시대보다 앞선 이야기이기 때문에, 구두의 의미를 알고 보면 세계관의 연결 고리가 더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결론
<위키드>는 제가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오래 생각하게 만든 작품입니다. 완벽하진 않습니다. 서사의 밀도에서 아쉬운 부분이 분명히 있고, 선동의 과정을 생략한 채 결과만 보여주는 방식은 주제의식을 약화시킵니다. 그럼에도 엘파바가 하늘로 솟구치는 그 순간은, 사회적 낙인과 편견에 맞서는 인간의 주체성을 이보다 더 잘 시각화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강렬했습니다.
오즈의 세계관을 미리 파악하고 가면 몰입감이 배가 됩니다. 특히 마법사의 정체, 마녀들의 구도, 프리퀄이라는 시간적 맥락 정도만 알아도 영화가 훨씬 풍성하게 읽힙니다. 파트 2가 개봉하면 엘파바의 선택이 단순한 은둔이었는지, 아니면 더 큰 혁명의 전주곡이었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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