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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신캐 주인공이라는 말을 듣고 반쯤 포기하고 들어갔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생각보다 훨씬 많은 걸 받아갔거든요. 하기와라 치하야를 전면에 내세운 코난 극장판 28기 《하이웨이의 타천사》— 추리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그게 오히려 이 영화를 더 솔직하게 만들어 준 것 같습니다.
액션 위주 구성, 처음엔 걱정했지만
코난 극장판 하면 으레 치밀한 추리 전개를 기대하게 됩니다. 제가 직접 봐온 시리즈만 따져도 저번 27기 《처안의 잔상》처럼 유능한 형사와 탐정이 사건을 차근차근 풀어가는 방식이 코난 극장판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해 왔으니까요. 그래서 이번 작품을 앞두고 걱정이 컸습니다.
그런데 제가 예고편을 자막, 더빙 가리지 않고 수십 번씩 돌려보면서 느낀 건 딱 하나였습니다. 이 영화, 대놓고 액션물이라고 선언하고 있다는 것. 카 체이싱과 바이크 추격전으로 화면을 꽉 채울 거라는 게 예고편부터 너무 명확했어요. 그러니 추리 기대는 접고 들어갔고, 결과적으로 그 선택이 맞았습니다.
이번 극장판은 작화 역량을 사실상 액션 시퀀스에 몰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기서 '작화 몰빵'이란, 추리 장면이나 드라마틱한 서사 연출에 들어갈 예산과 컷 수를 바이크·자동차 액션에 집중 투입했다는 의미입니다. 덕분에 속도감 있는 카메라 워크와 역동적인 앵글이 살아났고, 제가 4DX로 관람했을 때 느껴진 진동과 질주감은 극장 좌석에 앉아서도 몸이 반응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추리물을 기대한 분들에게는 실망이 클 수 있습니다. 이 점은 저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액션물로 선 긋고 들어가면 오히려 군더더기 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입니다.
- 추리 요소는 최소화, 바이크·자동차 액션이 서사의 빈 자리를 채움
- 4DX 관람 시 속도감과 진동이 극의 몰입도를 배가시킴
- 전작 《처안의 잔상》과는 완전히 다른 결의 극장판
- 예고편부터 액션물 노선을 명확히 예고했기에, 기대 조율이 핵심
하기와라 치하야, 의외로 입체적인 캐릭터였다
저도 처음엔 치하야가 주인공이라는 말에 반신반의했습니다. 애니메이션 기준 등장 에피소드가 세 편뿐인 신캐릭터가 극장판 한 편을 끌고 갈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일반적으로 서사가 탄탄한 기존 캐릭터가 주연을 맡아야 완성도가 높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 경험상 이번 경우는 그 공식이 꼭 맞지만은 않았습니다.
하기와라 치하야(萩原チハヤ)는 가나가와 현경 교통부 소속의 경부보(警部補)입니다. 경부보란 일본 경찰 계급 체계에서 경위 바로 위에 해당하는 중간 간부급 계급을 말하는데, 쉽게 말해 현장 지휘관으로 활동하는 실무 간부입니다. 거기에 '사이카(サイカー)'—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순찰하는 교통경찰 바이크 부대—로 활동하는 설정 덕분에, 이 캐릭터의 액션성은 처음부터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서 놀란 건 치하야의 '안쪽'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눈 한번 굴리면 바이크로 범인을 쫓는 강인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동생 하기와라 켄지와 그 친구들에 얽힌 과거 서사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확연히 다른 면이 드러납니다. 경찰학교조(警察学校組)—경찰 학교 동기들로 구성된 팬들에게는 유독 각별한 캐릭터 군—와 연결되는 지점에서는 저도 모르게 눈이 따가워졌을 정도였습니다. 겉은 강해 보이지만 속은 트라우마와 감정으로 가득 찬 입체적인 인물, 그게 치하야였습니다.
원작 서사가 빈약하다고 할 만한 캐릭터를 이 정도로 끌어올렸다는 건, 제작진이 치하야라는 캐릭터를 진지하게 연구했다는 방증으로 보입니다.

작화와 배경, 이번 극장판만의 색다른 볼거리
일반적으로 코난 극장판은 실제 관광지를 배경으로 삼아 지역 홍보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6기는 노베야마(野辺山) 국립천문대와 나가노 지역, 27기는 오다이루(大台ヶ原)와 하쿠타 전망대 등 실제 장소를 캐릭터들이 걸어다니고 차를 타며 소개하는 방식이었죠. 그런데 이번 28기는 그 공식에서 벗어났습니다.
요코하마를 기본 배경으로 하되, 카메라가 주로 잡는 건 도심 속 고속도로와 대형 교량, 탁 트인 도로입니다. 제가 직접 봐봤는데, 이 풍경이 꽤나 낯설고 신선했습니다. 코난 극장판에서 두부차가 공도 레이스라도 펼칠 것 같은 와인딩 로드나 탁 트인 다리 위 장면을 이렇게 오래 볼 줄은 몰랐거든요.
작화 퀄리티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번 극장판은 오토바이가 달리거나 액션이 펼쳐지는 장면은 3D CG로 처리했지만, 정지 장면이나 감정선이 중요한 컷에서는 2D 작화를 사용했습니다. 2D 작화(手描きアニメーション)란, 디지털 컴퓨터 모델 없이 프레임 한 장 한 장을 직접 그려내는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기법을 뜻합니다. 그 컷들의 완성도가 상당히 높았고, 특히 하이바라 아이가 어린 시절 코난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던 장면에서의 작화는 '역시 하이바라는 하이바라구나' 싶은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한 가지 특이점도 있었는데, 아오야마 고쇼(青山剛昌) 작가가 일부 장면의 작화를 직접 자신의 스타일로 수정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예고편에서 공개된 컷과 실제 개봉 버전이 다른 장면이 몇 군데 있는데, 이 차이를 예고편과 비교하며 찾아보는 재미도 꽤 쏠쏠합니다.
아쉬운 점과, 자막으로 봐야 하는 이유
영화가 끝나고 냉정하게 되짚어 보면 아쉬운 지점도 명확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명탐정 코난'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빈약한 추리 구조입니다. 범인의 동기와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는 과정이 다소 허무하게 느껴진 건 솔직한 감상입니다. AI 바이크 기술과 빅데이터를 소재로 삼았지만, 이를 추리의 재료로 쓰기보다는 그냥 화려한 소품으로만 소비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무리수 액션에 대해서도 짚어야겠습니다. 오토바이가 헬리콥터 위로 진입하거나 코난이 축구공 하나로 헬기를 상대하는 장면은, 만화적 과장(誇張演出)—즉 현실성보다 극적 재미를 우선시하는 애니메이션 특유의 연출 방식—의 범주를 상당히 넘어선다고 느꼈습니다. 코난 극장판이 매년 이런 장면을 넣어 왔다는 걸 알면서도, 이번 작품은 유독 실소가 나오는 빈도가 높았습니다. 오토바이라는 도구 덕분에 스케이트보드 무리수보다는 훨씬 납득이 가지만, 그래도 개연성의 한계가 느껴지는 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극장판을 자막으로 한 번 더 보러 갈 이유가 생겼습니다. 모리 란 역을 1기부터 27기까지 맡아온 야마구치 유리코(山口由里子) 성우가 건강 악화로 27기 이후 교체되었고, 2025년 5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이웨이의 타천사》는 야마구치 유리코 성우가 모리 란으로서 연기한 마지막 극장판 작품입니다. 출처: 오리콘뉴스 등을 통해 이 소식을 접했을 때, 더빙판만 보던 분들도 이번에는 자막판으로 극장에 한 번 더 가볼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치하야 성우 역시 교체 히스토리가 있습니다. 원래 치하야와 메리 세라를 중복 캐스팅으로 담당하던 다나카 아츠코(田中敦子) 성우가 2024년 타계하면서 교체가 이루어졌고, 새로운 성우는 27기 쿠키 영상을 통해 처음 공개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더빙판 역시 이 쿠키 영상을 통해 새 성우를 첫 공개했는데, 한국판 치하야 성우는 《너에게 닿기를》, 《짱구는 못말려》의 흰둥이 등 다수의 작품을 맡아온 정유미 성우입니다.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KOBIS 기준으로도 이번 코난 극장판은 한일 양국에서 의미 있는 흥행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코난 극장판 처음 보는 사람도 재밌게 볼 수 있나요?
A. 액션 위주 구성 덕분에 코난 시리즈를 전혀 모르는 분도 큰 무리 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다만 경찰학교조나 치하야·켄지 형제의 관계 등 감정선을 더 깊게 이해하려면 기본 설정을 조금 알고 가는 편이 훨씬 몰입도가 높습니다. 저도 경찰학교조 에피소드를 미리 챙겨보고 간 게 영화 감상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Q. 4DX로 보는 게 일반 상영보다 훨씬 낫나요?
A. 일반적으로 4DX 효과가 과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는데, 이번 작품은 바이크 질주와 카 체이싱이 주를 이루는 만큼 4DX 효과가 오히려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제가 직접 4DX로 봤을 때 진동과 속도감이 화면의 액션과 딱 맞아서 몰입을 방해하기보다 오히려 증폭시켜 줬습니다. 액션 장르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4DX 추천합니다.
Q. 자막이랑 더빙 중에 어떤 걸 보는 게 낫나요?
A. 야마구치 유리코 성우가 모리 란으로서 마지막으로 참여한 작품이 이번 극장판이라, 자막판에서만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평소 더빙으로만 코난을 봐왔다면 이번만큼은 자막판을 한 번 경험해 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두 버전 모두 치하야 성우 교체라는 비하인드가 있어서 어떤 쪽이든 나름의 감상 포인트가 있습니다.
Q. 쿠키 영상 있나요? 볼 만한가요?
A. 쿠키 영상 있습니다. 꼭 끝까지 자리를 지키세요. 내용을 언급하면 스포일러가 되니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게 만드는 장치가 담겨 있습니다. 코난 팬이라면 특히 반응이 클 내용입니다.
결론
정리하면, 《하이웨이의 타천사》는 '코난 극장판'이라는 이름 아래 나온 정통 추리물을 기대했다면 분명 아쉬움이 남는 작품입니다. 제가 직접 봐봤을 때 추리 구조의 빈약함과 무리수 액션은 부정하기 어려웠고, 그 점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공정한 평가가 됩니다.
하지만 액션 블록버스터로 접근한다면, 이 영화는 충분히 제 몫을 해냅니다. 속도감 있는 바이크 액션, 하기와라 치하야라는 예상보다 훨씬 매력적인 캐릭터, 그리고 야마구치 유리코 성우의 마지막 출연작이라는 무게감까지. 그냥 흘려보내기엔 아깝습니다. 쿠키 영상은 꼭 챙겨 보시고, 시간이 된다면 자막판으로 한 번 더 보는 것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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