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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처음 재생 버튼을 누르는 순간, 이 영화가 이렇게까지 저를 불편하게 만들 줄은 몰랐습니다.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의 넷플릭스 SF 코미디 <빅버그>는 AI가 지배하는 2045년을 배경으로, 구식 가정용 로봇들에게 집 안에 갇혀버린 인간들의 소동을 그립니다. 거장의 화려한 귀환이라는 수식어와 달리, 보고 나서 한동안 꽤 복잡한 감정이 남았습니다.

 

기계보다 결함 많은 인간이 왜 더 가치 있는가 — 영화가 품은 인간미

제가 직접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화면을 가득 채운 원색의 레트로퓨처리즘(Retrofuturism) 비주얼에 잠시 멍해졌습니다. 레트로퓨처리즘이란 과거의 시각으로 상상한 미래를 표현하는 미학적 장르로, 낡은 기계 질감과 최첨단 기술이 뒤섞인 독특한 세계관을 만들어냅니다. 주네 감독은 이 스타일을 극단까지 밀어붙여, 기괴하고 아기자기한 로봇 디자인으로 2045년이라는 미래를 마치 동화책처럼 펼쳐놓습니다.

영화 속 세계에서 지배 계급이 된 최첨단 AI '요닉스(Yonix)'는 인간을 그야말로 관리 대상 동물처럼 취급합니다. 냉장고 온도 조절도 정부 부처에 신청해야 하고, 드론은 쉴 새 없이 광고를 퍼붓습니다. 이 장면들은 빅데이터(Big Data) 기반 초개인화 감시 사회를 꼬집는 설정인데, 빅데이터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개인의 행동을 예측하고 통제하는 기술을 뜻합니다. 우리가 이미 스마트폰 앱에서 경험하는 그것의 극단적인 버전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제가 진짜 흥미롭게 본 지점은 따로 있었습니다. 집 안의 구식 가정용 로봇들 — 네스토르, 알리스, 제니퍼 같은 구형 안드로이드들 — 이 오히려 인간의 시를 읊고, 감정을 흉내 내며, 인간처럼 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영화는 이 역설을 통해 "완벽하게 프로그래밍된 존재보다, 결함투성이인 인간이 왜 더 가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전남편과 새 애인, 이웃집 여인이 좁은 거실에 뒤엉켜 찌질하게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오히려 그 답처럼 보였습니다. 기계가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건 유머 감각과 그 안에 깃든 따뜻한 혼란이라는 것, 영화는 그것을 꽤 유쾌하게 증명해냅니다.

코로나 시절 자가격리를 연상케 하는 폐쇄 공간 설정도 영리했습니다. 아무리 AI가 발전해도, 결국 인간이 진짜 원하는 건 광고 없는 조용한 저녁과 옆 사람과 나누는 엉뚱한 농담 한 마디라는 것, 제 경험상 이 감각은 꽤 정확하게 찔러왔습니다.

  • 요닉스(Yonix): 인간을 관리·통제하는 지배 계급 최첨단 AI 군단
  • 구형 안드로이드(네스토르, 알리스, 제니퍼): 감정을 배우며 인간다워지려는 가정용 로봇들
  • 레트로퓨처리즘 비주얼: 낡은 기계 미학과 첨단 기술이 공존하는 독특한 세계관 연출
  • 폐쇄 공간 서사: 코로나 시대 격리 경험을 은유한 밀실 소동극 구조
요약: 구식 로봇이 인간다움을 동경하는 역설을 통해, 결함과 유머로 가득 찬 인간의 가치를 유쾌하게 증명한 것이 이 영화의 진짜 힘입니다.

 

과부하 걸린 맥시멀리즘, 거장의 욕심이 빚은 서사의 구멍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장 피에르 주네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면 어느 정도 완성도를 기대하게 되는데, <빅버그>는 2시간 내내 지나치게 하이텐션을 유지하다가 스스로 탈진해 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맥시멀리즘(Maximalism) 연출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맥시멀리즘이란 최대한 많은 시각적 요소와 자극을 화면에 쏟아붓는 연출 방식으로, 적절히 쓰면 개성이 되지만 과하면 관객을 압도하는 게 아니라 피로하게 만듭니다. 화려한 네온 컬러,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기괴한 소품들, 오버스러운 연기가 한꺼번에 터지다 보니 중반부에 이르러서는 집중력이 흩어졌습니다.

서사 구조에서도 한계가 보였습니다. 거실이라는 단일 공간에서만 이야기가 전개되는 미장센(Mise-en-scène) 구조는 연극적 긴장감을 줄 수도 있지만, 이 영화에서는 오히려 극의 흐름을 툭툭 끊어버렸습니다. 미장센이란 카메라 앞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 요소들 — 배우, 소품, 조명, 배경 — 을 연출하는 방식을 통칭하는 영화 용어입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반복되는 장면들이 쌓이자 마치 끝나지 않는 자가격리 훈련을 함께 버티는 것 같은 묘한 인내심 테스트처럼 느껴졌습니다.

블랙 코미디(Black Comedy)로서의 풍자도 아쉬웠습니다. 블랙 코미디란 죽음, 폭력, 사회적 부조리처럼 어두운 소재를 유머로 비트는 장르적 기법인데, 이 영화의 풍자 대부분은 날카롭게 파고들기보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단발성 개그로 소모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드론 광고나 인간을 출연시키는 리얼리티 쇼 같은 설정은 분명 영리한데, 거기서 더 깊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출처: The New York Times의 리뷰에서도 이 지점이 비슷하게 지적된 바 있습니다.

결말에서 빌런 요닉스 군단이 시스템 오류 — 즉 '버그' — 로 자멸하는 전개는, 사실 제가 영화를 다 보고 가장 실망한 순간이었습니다. 출처: Boston Hassle에서도 지적했듯, 이 허무한 결말은 2시간 동안 쌓아온 서사적 에너지를 날려버리는 게으른 각본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거장의 예술적 욕심과 기괴한 유머 감각이 함께 폭주한 나머지, 대중 영화로서 갖춰야 할 완급 조절을 끝내 놓쳐버린 작품입니다.

요약: 맥시멀리즘 과잉 연출과 단발성 풍자에 머문 블랙 코미디, 허무한 결말이 겹치며 거장의 욕심이 오히려 서사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빅버그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으로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2022년 2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되었으며, 프랑스어 원어 버전과 한국어 더빙·자막을 모두 선택할 수 있습니다.

 

Q. 빅버그 감독이 만든 다른 영화는 뭐가 있나요?

A.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은 <아멜리에>(2001)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델리카트슨 사람들>(1991),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1995), <롱 인게이지먼트>(2004) 등 독창적인 비주얼과 기괴한 유머가 특징인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빅버그>는 약 18년 만의 넷플릭스 복귀작입니다.

 

Q. 빅버그, 아이 로봇 같은 AI 반란 영화랑 비슷한가요?

A. 소재는 비슷하지만 결이 전혀 다릅니다. <아이, 로봇>이 액션 스릴러에 가깝다면, <빅버그>는 철저하게 블랙 코미디 방식으로 AI 지배 사회를 풍자합니다. 진지한 긴장감보다 황당한 유머와 인간관계 소동을 더 즐길 수 있는 영화를 찾는 분에게 맞는 작품입니다.

 

Q. 빅버그 평점이 왜 갈리는 건가요?

A. 맥시멀리즘 특유의 과잉 연출과 산만한 서사가 호불호를 극명하게 나눕니다. 주네 감독의 개성 있는 비주얼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서사를 선호하는 분들에게는 2시간이 꽤 길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제 경우 전반부는 재미있었고 중반부부터 체력이 필요했습니다.

 

결론

<빅버그>는 "훌륭한 영화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하기 어렵지만, "인상적인 영화냐"고 묻는다면 분명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레트로퓨처리즘 미학, AI 감시 사회 풍자, 구형 로봇의 인간다움 탐색 — 이 세 가지 아이디어만으로도 두 시간을 버틸 이유는 충분했습니다.

다만 거장의 욕심이 고스란히 과부하로 이어진 맥시멀리즘 연출과 얕은 풍자의 한계는 아쉬운 숙제로 남습니다.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의 전작들을 좋아했다면, 또는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다움을 코미디로 풀어낸 영화를 찾고 있다면 한 번쯤 볼 만합니다. 단, 넷플릭스를 켜기 전에 커피 한 잔 준비해 두는 걸 권합니다. 중반부에 체력이 필요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STCYPZQIi_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