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류승룡과 하지원이 함께 나오는 작품이라면 믿고 봐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믿음이 이번엔 조금 흔들렸습니다. 《비광》은 화려한 삶을 살던 전직 야구선수와 톱배우 출신 부부가 숨겨진 딸의 등장과 맞물린 대형 스캔들로 한순간에 추락하고,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이야기입니다. 감정의 결은 분명히 살아 있었는데, 막상 영화관을 나오면서 든 생각은 좀 달랐습니다.

신파 클리셰와 과잉 감정 사이에서
《비광》이라는 제목은 비광숙 개구리에서 따온 말입니다. 여기서 비광숙(飛光宿)이란 도약하려 해도 제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는 처지를 빗댄 표현으로, 쉽게 말해 아무리 뛰어올라도 제 발광을 받지 못하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주인공 황중구는 고교 최대 유망주로 주목받았지만 트레이드를 거쳐 만년 꼴찌팀 NC로 이적하는 수모를 겪으며 딱 그 별명을 달고 살았죠. 그 시절을 잊지 않으려 팔에 새긴 문신이 영화 내내 클로즈업됩니다.
이적 3년 만에 시즌 34홈런을 기록하고 NC 팀 최초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던 그가, 8년 뒤에는 학교 야구부 코치 재계약을 위해 학부모 면담을 통과해야 하는 신세가 됩니다. 과거의 스캔들 때문입니다. 결혼 전 사귀던 여자친구가 극단적 선택을 했고, 그녀가 남긴 유서에 황중구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거기에 그가 존재조차 몰랐던 딸 동주의 존재까지 세상에 드러나면서 아내 남미의 촬영 현장까지 기자들이 몰려들었죠.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느낀 건, 이 설정 자체는 정말 촘촘하게 짜여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숨겨진 자식, 전 연인의 죽음, 언론 권력의 기획 보도라는 세 겹의 갈등 구조는 그 자체로 충분히 밀도 있는 서사입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 즉 극적 정화를 유도하는 장치들도 곳곳에 깔려 있었고, 초반부의 긴장감은 제 예상보다 훨씬 날카로웠습니다.
문제는 중후반부터였습니다. 갈등이 해소되는 방식이 너무 빠르고 작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서사 개연성(narrative plausibility), 다시 말해 이야기 흐름이 현실적으로 납득 가능한지를 따졌을 때, 딸 동주가 사건에 휘말리는 과정이나 최기자와 곽창기가 뒤에서 판을 짜는 방식이 조금 지나치게 편의적으로 맞아떨어집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에서는 인물들이 고통받는 장면이 많을수록 오히려 감정 소비가 빨리 되고, 결말에 다가갈수록 공감보다 피로감이 앞서게 됩니다.
신파적 멜로드라마(melodrama)라는 용어는 이처럼 감정의 강도를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서사 방식을 가리킵니다. 보는 내내 눈물을 쥐어짜는 장면이 이어지지만, 정작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가슴에 남는 게 생각보다 적습니다. 《비광》이 정확히 그 함정에 빠졌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 카타르시스를 노린 감정 장치가 중후반부에 과잉 집중되어 피로감을 유발
- 신파적 멜로드라마 구조 특유의 작위적 갈등이 반복되며 서사 개연성을 약화
- 언론 권력 비판이라는 사회적 메시지가 휴먼드라마와 충분히 융합되지 못하고 겉돔
- 황중구의 과거 야구 서사(비광 이미지)와 현재 서사의 연결고리는 인상적으로 작동
가족 서사가 살아남은 이유 — 배우들의 힘
그럼에도 이 영화를 끝까지 붙잡아 두는 건 배우들이었습니다. 류승룡이 연기한 황중구는 한때 그라운드를 씹어먹던 스타였다가 후덕한 동네 아저씨로 변한 인물인데, 그 낙차가 우습지 않고 오히려 쓸쓸하게 느껴지는 건 순전히 류승룡의 몸 연기 덕분입니다. 어깨를 조금 웅크린 채로 재계약 면담 자리에 앉아 있는 장면, 딸 동주가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는 순간 굳어버리는 표정, 이런 것들은 대사 없이도 8년의 무게를 전달했습니다.
하지원의 남미는 더 독특한 포지션입니다. 한때 아시아에서 한류스타로 자리매김했던 배우가 지금은 먹방 리포터로 생계를 이어가는 처지인데, 이 인물이 동주에게 손을 내미는 과정이 영화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감정선이었습니다. "나도 엄마가 없었고,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라는 대사는 억지스러운 희생이 아니라 동병상련(同病相憐)에서 비롯된 연대처럼 읽혔습니다.
제가 특히 주목했던 건 김시아의 황동주였습니다. 아동·청소년 배우에게 이 정도의 감정 밀도를 요구하는 장면들이 꽤 있는데, 제 경험상 이런 경우에 과잉 연기나 어색한 톤이 흔히 튀어나오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김시아는 달랐습니다. 자신의 등장으로 아버지 인생이 추락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사는 동주의 내면을, 대사보다 침묵과 눈빛으로 더 많이 전달하더군요.
감정 몰입도(emotional immersion)란 관객이 인물의 상황에 자신을 자연스럽게 투영하게 되는 정도를 말합니다. 《비광》은 시나리오 단계에서의 몰입도보다 배우들이 현장에서 만들어낸 몰입도가 훨씬 높은 작품이라고 저는 봤습니다. 서사가 끌고 나가는 영화가 아니라, 배우들이 서사를 억지로 살려낸 영화에 가깝습니다.
이주원 감독은 《미스 백》에서도 비슷한 방식을 택했습니다. 《미스 백》은 아동 학대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한지민의 연기에 많은 것을 위임했고, 그 선택이 결국 작품의 완성도를 지탱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출처: 영상물등급위원회). 《비광》도 그 연장선에 있는데, 다만 이번엔 인물에게 위임하는 감정의 양이 너무 많아서 배우들이 그 무게를 다 소화하기엔 시나리오의 뒷받침이 부족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국내 영화진흥위원회의 관객 조사에 따르면, 한국 관객이 가족 드라마 장르에서 가장 높이 평가하는 요소는 '배우 연기력'(68.3%)이며 '시나리오 개연성'(52.1%)이 그 뒤를 잇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비광》이 류승룡과 하지원이라는 캐스팅으로 기대를 모은 이유도 거기에 있고,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때의 아쉬움도 그 두 번째 항목에서 비롯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비광, 실화 바탕인가요?
A. 완전한 실화는 아닙니다. 다만 황중구라는 인물의 야구 서사는 실제 선수들의 이적과 재기 스토리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배경이 된 NC 다이노스의 창단 초기 시절과 맞닿는 설정들이 있어, 야구 팬이라면 더 구체적으로 감정이입이 되는 지점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Q. 미스 백 감독이 만들었다는데, 비슷한 분위기인가요?
A. 이주원 감독의 전작 《미스 백》과 비슷하게 사회적으로 소외된 인물들의 연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분위기 면에서는 《미스 백》이 더 절제된 연출을 보여줬다는 의견도 있고, 《비광》이 더 대중적이고 다층적인 서사를 쌓으려 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미스 백》 쪽이 감정 밀도와 절제의 균형이 더 잘 맞았다고 느꼈습니다.
Q. 신파 영화 싫어하는 사람도 볼 만한가요?
A. 솔직히 말씀드리면, 신파적 감정 과잉에 민감한 분이라면 후반부에서 피로감을 느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도 류승룡과 하지원의 연기 자체를 보러 간다는 목적이라면 충분히 값어치는 있습니다.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장면들은 시나리오를 웃돌 때가 많습니다.
Q. 비광이라는 제목이 무슨 뜻인가요?
A. 비광숙 개구리에서 따온 말입니다. 도약하려 해도 빛을 받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도는 존재를 뜻합니다. 주인공 황중구가 야구 선수 시절 만년 하위팀에서 빛을 발하지 못하던 시절에 붙은 별명이었고, 영화 전체의 주제 의식을 상징적으로 압축하는 키워드입니다.
결론
《비광》은 가족이란 세상이 모두 등을 돌리는 순간에도 끝까지 내 편으로 남는 존재라는, 사실 새롭지 않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 메시지에 반박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저는 그 메시지가 더 잘 전달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감정을 조금 덜 쥐어짜고, 서사의 개연성을 좀 더 단단하게 다듬었다면, 황중구와 동주와 남미가 겪는 비극이 단순한 소모품으로 소비되지 않고 훨씬 오래 마음에 남는 작품이 됐을 것입니다.
비광숙 개구리가 몇 번이고 뛰어오르듯 다시 살아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기획 의도만큼은 제가 진심으로 좋아합니다. 9월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으니, 배우들의 연기를 신뢰하는 분이라면 직접 확인해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 Total
- Today
- Yesterday
- 전종서
- 한국영화
- 주성치
- 한국범죄영화
- 반전영화
- 홍콩영화
- 드라마리뷰
- 유해진
- 한국스릴러
- 숨겨진명작
- 한국영화리뷰
- 한국액션영화
- 하지원
- 심리스릴러
- 스릴러영화
- 영화리뷰
- 넷플릭스추천
- 스릴러
- 공포영화
- 영화추천
- 마동석
- 결말포함
- 범죄스릴러
- SF스릴러
- 한국영화추천
- 넷플릭스드라마
- 액션영화
- 스포츠영화
- 코미디영화
- 황정민
|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 1 | 2 | 3 | 4 | 5 | ||
| 6 | 7 | 8 | 9 | 10 | 11 | 12 |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 27 | 28 | 29 | 3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