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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원작을 영화로 옮긴 작품 중 이토록 세계관 설정을 촘촘하게 설계한 경우는 드뭅니다. 제가 극장을 나오면서 처음 든 생각이 그거였습니다. "이 영화, 한 번만 보면 절반밖에 못 봤다."

배경설정 — 오즈는 어떻게 만들어진 세계인가
영화 <위키드>에서 오즈(Oz)라는 나라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인물은, 사실 마법사가 아닙니다. 이게 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반전인데, 오즈의 마법사는 미국 캔자스 근처 서커스단 출신의 평범한 사람입니다. 열기구 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오즈 세계로 날아든 것이 그의 시작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리머리(Grimmerie)'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그리머리란 오즈 세계의 역대 대마법사들이 남긴 마법서로,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자만이 진정한 마법사로 인정받는다는 예언이 담겨 있습니다. 오즈의 마법사는 처음 이 책을 보여받았을 때 "오마라(Oh, ma ra)!"라고 외쳤는데, 이는 사실 자기 고향으로 돌려보내달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언어를 모르는 오즈 사람들은 이를 책을 낭독한 것으로 착각하고 그를 위대한 마법사로 추앙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을 다시 짚어봤을 때, 단순한 오해에서 시작된 권력 구조가 얼마나 쉽게 굳어지는지가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오즈의 마법사는 마법 대신 정교한 퍼포먼스와 기술로 대중을 현혹했고, 그것이 통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판타지 세계관의 설정이 아니라, 권력이 어떻게 정당성을 획득하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정치적 우화(Political Allegory)입니다. 정치적 우화란 현실의 권력 구조나 사회 모순을 허구의 서사로 빗대어 표현하는 문학적 기법을 말합니다.
또 하나, 동물 차별 문제를 짚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즈 세계에서 동물들은 원래 인간처럼 말하고 사고하는 존재였지만, 마담 모리블(Madame Morrible)이 주도한 탄압 아래 침묵을 강요받습니다. 칠판에 쓰인 낙서 "동물들은 구경거리일 뿐, 말하지 말아라"는 문구가 그 상징입니다. 이 낙서를 쓴 범인이 영화에서 명시되지 않지만, 원작 소설의 맥락을 보면 모리블이 유력한 용의자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디테일은 한 번 보고서는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다시 보면서야 그 의미가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 오즈의 마법사: 캔자스 출신 서커스 일꾼, 우연히 오즈 세계에 도착
- 그리머리: 역대 대마법사들의 마법서, 세계관의 권력 정당성을 상징
- 동물 차별: 마담 모리블 주도의 언어 탄압, 소수자 억압의 메타포
- 정치적 우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서사 장치
캐릭터해석 — 엘파바와 글린다, 같은 상처 다른 선택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엔 엘파바와 글린다의 관계를 단순한 라이벌 구도로 읽었는데, 다시 들여다보니 두 사람은 같은 결핍에서 출발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걸어간 인물이었습니다.
먼저 클럽 씬에서의 춤을 짚어봐야 합니다. 글린다의 장난으로 모두의 웃음거리가 된 엘파바가, 도망치거나 분노하는 대신 춤을 추기 시작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서 엘파바가 선택한 것은 자존심을 지키는 방식으로서의 무관심 퍼포먼스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마법을 감정 폭발의 출구로 써왔던 그녀가, 그 분노를 억누르고 춤으로 덮어버린 것은 사실 자기 자신까지 속이는 행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진심 어린 자기 방어가 글린다의 죄책감을 건드렸고, 둘의 우정은 그 순간에 시작됩니다.
두 사람의 목표는 표면적으로는 비슷했습니다. 엘파바는 가문의 수치로 여겨지던 처지에서 벗어나 존경받는 존재가 되고 싶었고, 글린다 역시 단순한 인기를 넘어 사회적으로 유능한 마법사가 되는 꿈을 품었습니다. 그런데 딜라드 교수가 당국에 끌려가는 장면을 목격한 뒤, 엘파바의 목표는 완전히 바뀝니다. 그녀는 자신의 녹색 피부를 없애줄 수 있는 기회마저 거절하고, 억압받는 동물들의 편에 서기로 결심합니다. 이 지점이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특권을 포기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인데, 엘파바는 그것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해냅니다.
반면 글린다는 다른 선택을 합니다. 동물 권리 문제에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했던 그녀는 엘파바의 길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이것이 배신이냐 아니냐는 단순하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 현실적인 선택지를 가진 인물은 오히려 더 공감이 가기도 합니다. 글린다는 결국 오즈의 파트너로 '착한 마녀(Good Witch)'라는 타이틀을 얻지만, 내면은 공허합니다. 엘파바의 죽음을 기뻐해야 하는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이 그 공허함의 정점입니다.
피에로(Fiyero)도 흥미롭습니다. 겉으로는 욜로 인생을 외치는 왕자였지만, 사실 동물 차별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왕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침묵해왔습니다. 왕족의 발언은 개인의 의사 표현을 넘어 국가 전체의 정치적 입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엘파바를 만나 처음으로 자신의 정의감에 불이 붙은 것은, 그런 억눌린 신념이 오랫동안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리아나 그란데가 연기한 글린다의 입체성과 신시아 에리보의 압도적인 가창력이 이 복잡한 캐릭터들을 살아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캐스팅 자체가 이미 절반의 성공이었다고 봅니다(출처: BroadwayWorld).
작품평가 — 화려함 뒤에 남은 아쉬움
제가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한 말은 "눈과 귀가 황홀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생각하면 할수록 찜찜한 지점들이 생겼습니다.
먼저 긍정적인 면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뮤지컬 <위키드>가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데는 이유가 있는데, 영화는 그 이유 중 가장 핵심적인 것, 즉 두 주인공의 앙상블을 완벽하게 구현했습니다. 특히 파트 1의 클라이맥스인 'Defying Gravity' 시퀀스는 극장 전체를 전율로 채웠습니다. 'Defying Gravity'란 세상의 편견과 중력(억압)을 거슬러 자유를 향해 날아오르겠다는 엘파바의 선언이자, 뮤지컬 역사상 가장 널리 알려진 넘버(Number) 중 하나입니다. 넘버란 뮤지컬에서 극의 감정과 서사를 담아 배우가 노래로 표현하는 곡을 의미합니다. 신시아 에리보의 고음이 극장 천장을 뚫을 것 같던 그 순간은, 솔직히 제가 영화관에서 경험한 음악적 순간 중 손에 꼽습니다.
그런데 서사 구조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3시간에 달하는 상영시간을 가지고도 파트 1, 파트 2로 쪼개어 개봉한 결정은 상업적 계산이 앞선 구조적 선택입니다. 무대 뮤지컬의 1막을 영화 한 편으로 늘리다 보니, 쉬즈 대학(Shiz University) 시절의 에피소드들이 다소 늘어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제 경우엔 중반부에서 두 번 정도 시계를 확인했다는 게 솔직한 고백입니다.
VFX(시각 효과, Visual Effects)의 과잉 사용도 짚어야 합니다. VFX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실제로 촬영할 수 없는 장면을 컴퓨터로 만들어내는 영상 기법입니다. 에메랄드 시티(Emerald City)의 화려함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일부 장면에서는 인물과 배경이 어우러지지 못하고 붕 뜨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무대 뮤지컬이 아날로그적인 무대 장치만으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만들어냈던 유기적 감성과는 다른 질감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원작이 가진 소수자 차별(Minority Discrimination)에 대한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가, 팝스타일 비주얼에 다소 희석된 느낌은 지우기 어렵습니다. 소수자 차별이란 인종, 외모, 출신 등 다수와 다른 특성을 가진 집단에 가해지는 구조적 불평등을 뜻하며, <위키드>는 엘파바의 녹색 피부를 통해 이를 정면으로 다루는 작품입니다. 실제로 <위키드>의 원작 소설과 뮤지컬이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이유 중 하나는 이 묵직한 주제 의식 덕분이었습니다(출처: The Guardian). 화려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문법 안에서 그 무게감을 얼마나 지킬 수 있었느냐는, 파트 2가 나와야 최종 판단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위키드 영화는 원작 뮤지컬이랑 내용이 많이 다른가요?
A. 큰 줄기는 같지만 세부 설정에서 꽤 차이가 납니다. 예를 들어 원작 소설에서는 글린다가 마법에 엄청난 재능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는데, 영화에서는 그 부분이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또 소설에서는 마담 모리블이 초반부터 대놓고 동물 탄압을 주도하지만, 영화에서는 뒤늦게 그 실체가 밝혀지는 구조로 각색되었습니다. 원작의 팬이라면 이런 차이들이 흥미롭게 느껴질 수도,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Q. 위키드 파트 1 결말에서 엘파바는 어떻게 되나요?
A. 파트 1은 엘파바가 오즈의 마법사와 결별하고, 마법서 그리머리를 들고 탈출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이 시점에서 엘파바는 오즈 사람들에게 '최악의 마녀'로 낙인찍히고, 글린다는 '착한 마녀'로 대비되는 구도가 완성됩니다. 이 설정이 훗날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에서 도로시가 만나는 서쪽 마녀와 북쪽 마녀의 원형이 됩니다.
Q. 위키드가 오즈의 마법사랑 어떻게 연결되나요?
A. 연결 지점이 꽤 많습니다. 엘파바의 여동생 네사로즈가 도로시의 집에 깔려 죽는 동쪽 마녀이고, 글린다는 북쪽의 착한 마녀입니다. 날개 달린 원숭이 부대도 원래 엘파바의 마법으로 날개를 얻은 존재이며, 노란 벽돌길도 오즈의 마법사가 에메랄드 시로 가는 계획을 세우며 등장합니다. 이 설정들을 알고 보면 오즈의 마법사가 전혀 다른 이야기로 읽히는 재미가 있습니다.
Q. 위키드 파트 2는 언제 나오나요?
A. 제가 이 글을 쓰는 시점 기준으로 파트 2는 2025년 개봉 예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공식 일정은 배급사 발표를 직접 확인하시는 것이 정확합니다. 파트 1의 결말이 열린 구조로 끝난 만큼, 엘파바와 글린다의 최종 서사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지켜보는 것이 이 영화를 즐기는 핵심 포인트입니다.
결론
정리하면, <위키드>는 세계관 설정과 캐릭터 서사 면에서 단층적으로 읽히는 영화가 아닙니다. 오즈의 권력 구조, 동물 차별, 엘파바와 글린다의 선택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를 이해하면, 단순한 뮤지컬 영화가 아닌 꽤 정교한 정치적 우화로 읽힙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두 번 보고 나서야 이 연결고리가 온전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파트 분할과 VFX 과잉 사용, 사회적 메시지의 희석은 분명한 한계입니다. 파트 2가 이 아쉬움을 어떻게 보완할지가 관건입니다. 지금 시점에서 <위키드>를 아직 안 보셨다면 극장 음향으로 보시길 추천합니다. 신시아 에리보의 목소리는 작은 화면으로 경험하기엔 너무 아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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