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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 코미디라고 해서 가볍게 틀었다가 화면을 끄지 못했습니다. 웨이브 첫 오리지널 드라마 <유 레이즈 미 업>은 비뇨기과라는 낯선 배경을 내세워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지만, 제가 실제로 보면서 느낀 건 그게 아니었습니다. 6년 차 공시생의 무너진 자존감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이 드라마는, 청춘의 좌절을 누구보다 솔직하게 건드립니다.

 

성장드라마의 탈을 쓴 자존감 회복의 기록

일반적으로 '성인 소재 드라마'라고 하면 자극적인 장면 몇 개로 화제를 모으다 금세 잊히는 작품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봐보니 이 작품은 달랐습니다. 수위 높은 설정 뒤에 숨어 있는 건, 31살 공시생 도용식(윤시윤 분)이 무너진 자기 자신을 어떻게 다시 세우는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드라마가 발기부전(erectile dysfunction)이라는 신체 증상을 주요 소재로 삼은 이유가 처음에는 의아했습니다. 여기서 발기부전이란 단순한 의학적 질환이 아니라, 주인공이 쌓아온 열등감과 자존감 붕괴가 신체에 발현된 심인성(psychogenic) 증상으로 그려집니다. 쉽게 말해, 마음이 먼저 병들었고 몸이 그걸 따라간 것입니다. 이 설정이 제게는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자존감 저하가 실제 신체 기능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임상심리학 연구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출처: NIH PubMed, 심인성 발기부전 관련 임상 연구).

저 역시 무언가를 간절히 준비하면서 미래가 불투명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동창회 단체 채팅방에 취업 소식, 승진 소식이 올라올 때마다 스마트폰을 뒤집어 놓던 기억이 납니다. 용식이 고교 동창들 앞에서 연매출 50억짜리 IT 회사 대표인 척 거짓말을 하는 장면은, 그냥 웃어넘기기가 어려웠습니다. 그게 너무 익숙한 감각이었거든요.

드라마는 용식의 회복 과정을 최면 요법(hypnotherapy)을 통해 보여줍니다. 최면 요법이란 의식의 긴장을 낮춘 상태에서 무의식 속 트라우마의 원인을 탐색하는 심리 치료 기법을 말합니다. 용식이 최면 상태에서 핑크색 강박의 기원을 추적하는 장면은 드라마의 가장 인상 깊은 시퀀스 중 하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강박 행동은 단순한 취향 문제로 여겨지기 쉬운데, 제 경험상 이 드라마는 그 이면의 심리적 방어 기제(defense mechanism)를 꽤 정교하게 묘사해냈습니다. 방어 기제란 불안이나 두려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심리 과정입니다.

결말은 예상을 빗나갑니다. 용식은 9급 공무원 최종 면접에서 탈락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가장 뭉클했습니다. 6년의 노력이 보상받지 못하는 결말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담담히 타인의 기준 대신 자기 속도를 선택하는 모습은 거창한 합격 통보보다 훨씬 묵직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 심인성 발기부전 — 신체 이상이 아닌 심리적 원인으로 발생하는 발기 장애
  • 최면 요법 — 무의식 속 트라우마를 탐색하는 심리 치료 기법
  • 방어 기제 —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무의식적 심리 과정
  • 핑크색 강박 — 용식이 불안한 순간마다 의존하는 심리적 안전 장치
요약: 유 레이즈 미 업은 자극적 소재 뒤에 자존감 붕괴와 심리 회복을 섬세하게 담은 성장 드라마로, 발기부전을 심인성 증상으로 그린 설정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신선한 설정이 후반부에서 힘을 잃는 이유

이 드라마가 완벽한 웰메이드 작품이라고 하기엔 솔직히 주저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직접 8부작을 완주하고 나서 느낀 아쉬움은 꽤 명확했습니다.

가장 도드라지는 문제는 서사 구조의 뒷심 부족입니다. 초반부를 이끌어가는 '비뇨기과에서의 첫사랑 재회'라는 설정은 파격적이고 유쾌했습니다. 그런데 중후반부로 갈수록 이 드라마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문법으로 조용히 회귀합니다. 일반적으로 파격적 소재를 내세운 드라마일수록 그 발칙함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 경험상 이 작품은 후반부에서 그 에너지를 스스로 소진해버립니다.

캐릭터 구도도 아쉽습니다. 주인공 용식의 자존감 회복이 지나치게 이루다라는 외부 조력자의 헌신에 의존합니다. 자기효능감(self-efficacy) 측면에서 보면 문제가 됩니다. 자기효능감이란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가 제시한 개념입니다. 회복 과정이 주체적 노력보다 타인의 돌봄으로 견인되다 보니, 유사한 상황에 처한 시청자에게 '저런 완벽한 조력자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박탈감을 줄 우려가 있다고 봤습니다. 실제로 이 부분은 SNS 시청 후기에서도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출처: 웨이브(Wavve) 공식 서비스).

도지혁(박기웅 분) 캐릭터 역시 아쉬움을 남깁니다. 오만한 금수저 라이벌이라는 전형적인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8부작이라는 짧은 회차 안에서 여러 인물의 심리적 깊이를 다 살리기 어려운 건 이해하지만, 후반부에서 지혁이 돌연 성장하는 흐름은 다소 급조된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드라마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나는 절대로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는 용식의 독백은, 성공 신화가 아닌 존재의 회복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가 가진 진심을 보여줍니다. 그 문장 하나가 제가 봐왔던 어떤 자기계발 콘텐츠보다 더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요약: 파격적 소재가 후반부에서 힘을 잃고 주인공의 회복이 외부 조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적 아쉬움이 있지만, 존재의 회복을 이야기하는 진심만큼은 유효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유 레이즈 미 업 수위가 정말 높은가요?

A. 방영 당시 19금 수위로 화제가 됐고 초반부에 다소 파격적인 장면들이 등장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면 수위가 서사의 핵심이 아니라는 점을 금방 알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성인 소재 드라마라면 자극적 장면이 주를 이룰 거라 예상하기 쉬운데, 제 경험상 이 작품은 중반 이후 오히려 감정 드라마에 가깝게 흘러갑니다.

 

Q. 공시생 이야기라면 너무 특정 계층 이야기 아닌가요?

A. 표면상 공시생 서사지만 본질은 취업 실패, 자존감 하락, 타인과의 비교라는 훨씬 보편적인 이야기입니다. 제가 공시생이 아님에도 용식의 고군분투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이었습니다. 30대를 앞두고 혹은 지나면서 '내가 뒤처진 건 아닌가' 싶었던 경험이 있다면 공감 포인트가 꽤 많습니다.

 

Q.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중에서 볼 만한 편인가요?

A. 웨이브 첫 오리지널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완성도 면에서는 도전적인 시도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플랫폼 초기 오리지널 작품은 안전한 소재를 택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작품은 그 반대로 갔습니다. 8부작이라 진입 장벽도 낮고, 자존감과 회복이라는 주제에 관심 있다면 충분히 시간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Q. 발기부전이 드라마 소재인 게 불편하지 않나요?

A. 처음엔 저도 어색하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가 이 소재를 자존감과 트라우마의 은유로 사용한다는 걸 알게 되면 불편함이 꽤 빠르게 사라집니다. 오히려 이 설정 덕분에 '마음이 무너지면 몸도 반응한다'는 심인성 증상의 현실을 드라마가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건드릴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결론

<유 레이즈 미 업>은 수위 논란이라는 포장지를 걷어내면, 자존감 회복의 과정을 꽤 솔직하게 그린 드라마입니다. 구조적 아쉬움이 분명히 있고, 후반부의 뒷심 부족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오래 생각하게 된 건 그 결함들이 아니라, 거창한 성공 없이도 자기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 용식의 마지막 표정이었습니다.

자존감이 바닥을 찍었던 시절이 있거나, 타인의 성공 앞에서 작아졌던 경험이 있다면 이 드라마는 꽤 다른 온도로 다가올 겁니다. 웨이브에서 전편을 볼 수 있으니, 8부작이라는 짧은 분량 정도는 한번 투자해볼 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gww2TFb8u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