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인터넷을 떠돌던 '치악산 18토막 살인사건' 괴담이 스크린으로 옮겨온다고 했을 때, 저는 꽤 기대를 품고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실제 지명과 도시전설이 맞물린 한국형 산악 호러라는 조합은 처음부터 남달리 당겼으니까요.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 제가 느낀 건 공포가 아니라 허탈함이었습니다. 치악산 괴담을 원작으로 삼은 설정, 처음엔 통했다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느낀 건, 도입부만큼은 꽤 영리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영화 은 산악바이크 동호회 '산가자' 멤버들이 라이딩 영상 촬영을 명목으로 깊은 산속 산장을 찾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현대인의 취미 활동인 마운틴 바이킹(MTB, Mountain Biking)을 공포 서사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인데..
원작 만화의 팬층을 보유한 작품이 드라마로 옮겨올 때, 가장 큰 숙제는 방대한 세계관을 얼마나 매끄럽게 압축하느냐입니다. 드라마 는 그 숙제를 절반쯤 해냈습니다. 제주도라는 배경, 정염귀(정염기)라는 악귀의 존재, 반인반귀(半人半鬼)의 비극적 운명까지, 소재만큼은 정말이지 탐났습니다. 처음 예고편을 봤을 때 "이건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 보고 나서 드는 감정이 뭔가 뜨거웠다가 미지근해진 느낌이었습니다. 세계관과 배우가 만든 흡입력드라마 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세계관 그 자체입니다. 정염귀(正炎鬼)란 인간의 몸을 빼앗아 그 형상으로 위장한 채 영원히 살아가는 악령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인간과 구분이 불가능한 형태로 사회 깊숙이 침투한 존재인데, 이 설정 하나가 극 내내 끊임없는 긴장감을 만들어..
솔직히 저는 이 드라마를 처음 틀었을 때 '그냥 또 연쇄살인 수사물이겠지' 하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첫 회에서 피해자 발목의 전자발찌, 잘린 혀, 그리고 수사관의 표정에 담긴 기시감을 보는 순간 채널을 끄지 못했습니다. 천재적 연쇄살인마 정희신과 그녀의 아들이자 형사인 차수열의 이야기, 는 단순한 범죄 스릴러를 넘어 혈연과 정체성이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23년의 간극 — 사막귀 세계관과 배경드라마의 배경은 두 개의 시간대를 교차합니다. 2001년, 탄광 폐업으로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사람들이 넘쳐났던 웅산이라는 마을. 거리는 술 취한 무직자들로 가득했고, 가정 폭력이 일상이 된 그 공간에서 이신(정희신)이라는 여성이 조용히 등장합니다. 그리고 현재, 그녀의 모방범이 나타..
2008년 개봉한 영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한석규와 차승원이라는 두 배우만으로도 극장 좌석을 꽉 채울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기대 이상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보고 나서는 마음 한켠에 "아깝다"는 감정이 남았습니다. 스타일은 완벽에 가까운데 서사가 조금씩 삐걱거렸기 때문입니다. 케이퍼무비로서의 완성도 — 두뇌싸움이 만드는 긴장감이 영화는 케이퍼 무비(Caper Movie)의 전형적인 구조를 따릅니다. 케이퍼 무비란 정교하게 계획된 범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장르로, 범죄자 집단의 치밀한 준비와 실행 과정을 오락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머리 좋은 도둑들이 판을 짜고, 형사가 뒤를 쫓는' 그림이죠.영화의 발단은 대낮에 벌어지는 현금 수송차 탈취..
연쇄 살인마가 잡혔는데도 피해자 가족의 지옥은 끝나지 않는다면, 법은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요. 2015년 개봉한 범죄 스릴러 는 바로 그 불편한 질문을 정면으로 던지는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범인을 잡았는데 왜 이야기가 시작되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이 작품의 핵심이었습니다. 피해자 가족의 시선으로 본 사적 복수의 민낯영화를 보기 전에 저는 막연히 '복수극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스크린 앞에 앉았을 때 느낀 건 통쾌함이 아니라 먹먹함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이 아니라, 범인이 이미 잡힌 이후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연쇄 살인마 조강천은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집행은 되지 않고, 그 사이 피해자 가족들은 매일 지옥 속에서 살아가죠.여기서..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날, 범인이 다시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저는 이 전제 하나만으로 영화 (2013)를 틀었는데, 끝나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단순한 범인 추적극이 아니라, 법이 끝난 자리에서 한 엄마가 내린 선택을 따라가는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서술 트릭과 공소시효: 이 영화가 구조를 짜는 방식영화는 15년 전 딸 서진이를 유괴로 잃은 엄마 하경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형사 청호가 그녀를 찾아와 공소시효 만료를 통보하는 장면은, 저도 모르게 등이 서늘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공소시효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범죄에 대한 국가의 형사 처벌권이 소멸되는 제도입니다. 쉽게 말해 시간이 흐르면 아무리 확실한 범인이라도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게 된다는 뜻입니다.실제로 대한민국 형법은 과거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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